나이란 건 도대체 언제쯤 익숙해질까. 스무 살에도 두려웠고, 서른에도 불안했고, 이제 서른여덟을 지나 마흔이 코앞에 다가오니 더 무섭다. 단순히 숫자가 늘어나는 건데, 그 숫자가 내 삶을 자꾸 재단하는 것 같아 괜히 주눅이 든다.
스무 살의 나는 늘 서른을 상상했다. 서른이면 직장도 안정되고, 내가 쓰고 싶은 글도 쓰면서,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서른이 되었을 때 나는 어른보다는 여전히 불안한 아이에 가까웠다. 돈은 늘 부족했고, 실패는 잦았으며, 자존심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은 늘 마음 어딘가에 걸려 있었다. 그때는 서른이 참 무겁게 느껴졌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참 젊었다.
스물서너 살쯤, 나는 또래보다 조금 일찍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았고, 결국 이혼까지 했다. 남들보다 앞서 짊어진 무게였지만, 한 가지 위안은 있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언제 결혼할 거냐”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건 이상하게도 묘한 자유처럼 다가왔다. 삶이 내게 서둘러 많은 것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나를 괴롭히던 사회적 잣대 하나를 거둬 간 셈이었다.
마흔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또 다르다. 거울을 보면 눈가에 주름이 희미하게 자리 잡고 있다. 새치가 몇 가닥씩 올라오는 걸 뽑다가, 이젠 그냥 두는 게 편해졌다. 밤새워도 끄떡없던 체력은 이제 없고, 하루만 무리해도 이틀은 회복해야 한다. 몸은 정직하게 나이를 말해준다. 마음만 젊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묻는다. 나이 먹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건 나만일까.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늙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나는 유독 발걸음이 무거운 걸까.
어쩌면 이유는 ‘가능성의 축소’에 있을지 모른다. 스무 살의 나는 실패가 두렵지 않았다. 잘못되면 다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실패하면 다시 시작할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예전만큼 회복이 빠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모험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습관이 생겼다. 용기 대신 현실이 앞선다. 안전한 길만 고르게 된다. 안정은 달콤하지만, 때로는 답답한 족쇄다.
그러나 나이가 주는 선물도 있다. 스무 살 때는 알지 못했던 감정의 결들이 생겼다. 누군가의 한숨이, 오래된 노래 한 소절이, 계절의 바람이, 뜻밖에 깊게 와닿는다. 예전 같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풍경이 지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이해와 공감의 폭이 넓어졌다. 그건 분명 나이라는 시간이 준 힘이다.
하지만 그 힘이 늘 달갑지만은 않다. 이해가 깊어질수록 상실도 커진다. 친구의 부고 소식이 낯설지 않게 다가오고, 부모님의 얼굴에는 시간이 솔직하게 새겨져 있다. 예전에는 영원할 것 같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나이는 결국 상실을 감당하는 훈련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어쩌면 나이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같은 서른여덟에도 누군가는 “아직 젊다”라고 하고, 누군가는 “벌써 늙었다”라고 말한다.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나이를 두려움으로만 볼 수도 있고, 또 다른 가능성으로 볼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미래의 나이가 두렵다. 마흔, 쉰, 예순, 그 이후는 더더욱. 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다. 그 나이가 되면 지금의 이 불안을 어떻게 말할까.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때 왜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모르겠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결국 나이는 나를 묻는 질문 같다. 답은 매년 달라지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살아간다는 것일 테다. 서툴렀던 순간, 후회스러운 선택, 지나간 사랑, 실패와 상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이를 먹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던 풍경을 나는 이미 보고 있다. 두렵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 조금은 단단해진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나이를 안 먹을 순 없나. 대답은 여전히 없지만, 그 질문 속에서 또 하루를 산다. 그리고 내일이면 또 다른 나이의 내가 된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이 길 위에서, 나는 나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숫자는 늘어나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여전히 나의 것이다. 언젠가 이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나는 살아낸 시간으로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나이란 두려움이 아니라, 결국은 내 안에 켜켜이 쌓인 또 하나의 이야기다.
'Creative writing(창작 이야기) > 1. 에세이(Essay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이라는 영화의 장르에 대하여 (0) | 2025.06.23 |
---|---|
튀김과 와인 사이, 오늘도 나를 토닥인다 (백수ver.) (2) | 2025.06.13 |
잠이 오지 않는 밤, 생각은 운동장을 달린다 (0) | 2025.06.13 |
Out of sight, out of mind (0) | 2025.06.10 |
싱숭생숭, 나를 흔드는 작은 바람 (0) | 2024.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