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주하지 않는 것들은 점점 희미해진다. 눈앞에 없는 것들은 마음에서도 저절로 지워진다. 마치 먼지 쌓인 사진첩처럼, 한때 소중했던 존재도 시간이라는 침묵 앞에 잊히기 마련이다. 'Out of sight, out of mind'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하는 관계의 본질이고, 시간과 기억의 작동 방식이다.
어느 날,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된 편지를 발견했다. 이름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이내 곧 아무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애틋해하던 사람인데, 지금은 얼굴도 목소리도 희미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눈에서, 마음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꼭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저 함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사이, 우리는 서로에게 점점 무관해졌고, 결국 낯선 사람이 되었다.
기억은 눈과 손끝의 습관을 닮아 있다. 자주 보지 않으면, 자주 만지지 않으면, 익숙했던 것도 낯설어지고 만다. 마치 오래 놓아둔 피아노가 소리를 잃고, 주지 않던 화분이 시들듯이. 아무리 뜨겁던 감정도, 아무리 진했던 인연도 결국은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퇴색한다. 사랑도, 우정도, 관심도 다르지 않다. ‘계속 본다는 것’은 그만큼 계속 마음에 둔다는 뜻이다.
하지만 때때로, 보이지 않아도 잊히지 않는 존재도 있다. 눈앞에서 사라졌는데도 매일 떠오르는 얼굴, 목소리, 손짓. 그런 사람은 예외다. 마음에 너무 깊이 새겨진 나머지,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매일같이 떠올라 더 애틋하고, 그리움의 깊이를 더한다. 결국 ‘Out of sight, out of mind’는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눈앞에 없어도 마음 한편에 단단히 자리 잡는다.
그러나 현실의 대부분은 예외가 아니다. 사람들은 흘러가고, 풍경은 바뀌며, 우리는 그 변화에 적응한다. 보고 있지 않으면 멀어진다. 신경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익숙했던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어느새 그 낯섦에 익숙해진다. 그렇기에 우리가 무엇을 '계속 본다'는 건 중요하다. 누군가를 자주 떠올린다는 건, 잊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따금 생각한다. 내가 잊은 사람들은, 나도 그들의 마음에서 잊혔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서로를 보지 않고, 기억하지 않으며, 더는 ‘같은 장면’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는 늘 가꾸어야 하는 정원 같다. 방치하면 잡초가 무성해지고, 돌보지 않으면 꽃은 시든다. 보이지 않아도 돌보는 마음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관계는 유지된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보이지 않는다고 무조건 잊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시간은, 확실히 마음을 흐리게 만든다. 그러니 기억하고 싶은 것들은 자주 들여다보자.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자주 떠올리자. 마음이 멀어지지 않게, 눈으로는 못 봐도 마음으로는 지켜볼 수 있도록.
― 그리고 혹시 지금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당신이 아직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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