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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writing(창작 이야기)/1. 에세이(Essays) 8

인생이라는 영화의 장르에 대하여

어떤 장르의 영화처럼 살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액션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며, 환상적인 판타지도 아니다. 나는 조용하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휴먼드라마 속을 살아가고 싶다. 반짝이는 클라이맥스가 없어도 좋고, 박수를 유도하는 영웅의 서사도 없어도 된다. 다만, 그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들이 조용히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독이며,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그런 이야기라면, 나는 충분히 만족스럽다.내 인생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조연이기도 하다. 조연으로서 누군가의 장면을 완성시켜주는 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빛나는 한 사람 뒤에 존재하는 조용한 배경처럼, 나는 누군가의 하루를 덜 외롭게 만들고, 어깨를 토닥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튀김과 와인 사이, 오늘도 나를 토닥인다 (백수ver.)

하루 종일 집에 있었지만, 피곤하다.남들은 백수는 한가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가만히 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은 잠잠하지 않고, 머릿속은 멈추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은 없지만, 생각은 쉴 틈 없이 밀려오고,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조급함이 자꾸 등을 밀어댄다. 그러니 저녁이 되면, 나도 나름대로 지쳐 있다.조용한 밤, 혼자 있는 방. 이건 내 작은 세계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내 맘대로 조명을 낮추고, 스탠드 불빛만 켜 둔다. 그리고 오늘도 내 취향을 꺼내 든다 — HARDY’S VR Moscato 2021.처음 이 와인을 마셨을 때를 기억한다. 한 모금 입에 머금었을 뿐인데도, 그 향이 주는 위안은 꽤 컸다. 리치, 복숭아, 청포도 같은 향들..

잠이 오지 않는 밤, 생각은 운동장을 달린다

잠을 자야 한다는 건, 어쩌면 하루 중 가장 확실한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눈꺼풀은 자꾸만 무거워지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는 힘마저 빠져나가려 할 때쯤이면 내 몸은 분명 잠들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머리는 각성한다. 무대의 조명이 꺼졌는데도 혼자 남아 마이크를 붙잡고 독백을 이어가는 배우처럼, 내 머릿속 생각들은 밤을 무대로 삼아 줄줄이 나와 박수도 받지 못한 채 사라지지 않는다.오늘 지나온 하루를 되감기처럼 다시 틀어보기도 하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내일을 미리 상상해 염려하고, 누구의 말 한마디를 곱씹으며 혼자 상처받기도 한다. ‘그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때 그 표정은 무슨 뜻이었을까.’ ‘혹시 나를 오해한 건 아닐까.’ 이미 끝난 상황에 자꾸만 ..

Out of sight, out of mind

우리가 마주하지 않는 것들은 점점 희미해진다. 눈앞에 없는 것들은 마음에서도 저절로 지워진다. 마치 먼지 쌓인 사진첩처럼, 한때 소중했던 존재도 시간이라는 침묵 앞에 잊히기 마련이다. 'Out of sight, out of mind'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하는 관계의 본질이고, 시간과 기억의 작동 방식이다.어느 날,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된 편지를 발견했다. 이름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이내 곧 아무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애틋해하던 사람인데, 지금은 얼굴도 목소리도 희미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눈에서, 마음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꼭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저 함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사이, 우리는 서로에게 점점 무관해졌..

싱숭생숭, 나를 흔드는 작은 바람

싱숭생숭. 이 단어는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내 안에서 잔잔히 파동을 일으킬 때, 나는 종종 이 단어를 떠올린다. 확실한 이유가 없는데도 마음이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품고 흔들릴 때, 나는 그 기분을 ‘싱숭생숭하다’고 부른다.이상하게도, 이 감정은 계절이 바뀔 때 자주 찾아온다. 봄이 오기 전날 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땅이 서서히 녹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들뜨고 허전하다. 혹은 가을 저녁,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창가에 앉아 있을 때, 잎사귀 하나가 떨어지는 걸 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련함이 몰려온다.싱숭생숭한 기분은 때로는 아주 사소한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오래된 노래를 우연히 듣거나, 지나가던 거리에서 알 수 없는 익숙함을 느낄 때. 아무 ..

삶:)자장면, 기억의 맛

면 요리를 좋아하는 내가 유일하게 손대지 못하는 음식이 있다면, 그건 아마 자장면일 것이다. 어릴 적엔 별다른 문제없이 맛있게 먹었을 것 같지만,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자장면을 먹을 때면 항상 소화가 안 되어 속이 더부룩하고 결국 체하고 만다는 것이다.어쩌면 그 시작은 임신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생명을 품은 몸은 평소와 다르게 민감해졌고, 자장면처럼 진하고 기름진 음식은 한 숟갈만 먹어도 속이 뒤집히는 일이 잦았다. 아니면 그날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잔뜩 긴장한 채 누군가와의 대화를 이어가던 자리였는지, 억지로 웃으며 한 입 한 입을 넘겼던 순간 때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장면은 어느새 내게 두려운 음식이 되고 말았다.그래도 가끔은 자장면이 생각난다. 탕수육..

에세이:)12월의 이야기

12월은 마치 한 권의 책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처럼 다가온다. 1월의 희망과 6월의 활기는 이미 지나갔고, 한 해 동안 쌓였던 시간들이 차분히 정리되는 달이다. 나는 이 달을 "회고와 기대의 달"이라고 부르고 싶다. 회고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고, 기대는 앞으로 펼쳐질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추운 바람이 피부를 스칠 때마다 한 해의 흔적이 마음을 울린다. 좋은 기억들도, 아쉬움으로 남은 순간들도 모두 그 바람에 녹아든다. 아침 창문에 맺힌 성에를 닦으며 떠오르는 건, 지나간 나의 모습이다. 어쩌면 나는 내가 바라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갔을 수도, 아직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할까? 중요한 건 내가 이 한 해를 살아냈다는 사실일 것이다.12월은 누군가에겐 반짝이는 불빛과 따뜻한 ..

꿈/에세이

작가로 어른이 되다어릴 적, 나는 동화를 읽으며 자랐다. 신데렐라가 새벽별처럼 반짝이는 유리 구두를 신을 때마다 마음이 설레었고, 백설공주가 첫사랑의 키스로 깨어날 때면 사랑의 기적을 믿고 싶었다. 장화홍련의 슬픈 이야기에 가슴 아파하며 울고, 심청이가 연꽃 속에서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세상에 효가 주는 감동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콩쥐팥쥐의 힘겨운 순간을 넘어서는 모습은 약자도 결국엔 승리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그때 나는 결심했다.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법 같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내 손끝에서 태어난 이야기가 누군가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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