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 writing(창작 이야기)/1. 에세이(Essays)

잠이 오지 않는 밤, 생각은 운동장을 달린다

사_계季의 기록자 2025. 6. 1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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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야 한다는 건, 어쩌면 하루 중 가장 확실한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눈꺼풀은 자꾸만 무거워지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는 힘마저 빠져나가려 할 때쯤이면 내 몸은 분명 잠들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머리는 각성한다. 무대의 조명이 꺼졌는데도 혼자 남아 마이크를 붙잡고 독백을 이어가는 배우처럼, 내 머릿속 생각들은 밤을 무대로 삼아 줄줄이 나와 박수도 받지 못한 채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지나온 하루를 되감기처럼 다시 틀어보기도 하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내일을 미리 상상해 염려하고, 누구의 말 한마디를 곱씹으며 혼자 상처받기도 한다. ‘그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때 그 표정은 무슨 뜻이었을까.’ ‘혹시 나를 오해한 건 아닐까.’ 이미 끝난 상황에 자꾸만 다시 입장을 해보며 답 없는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건, 피곤한 줄도 모르고 운동장을 돌고 있는 생각들 덕분이다.

어릴 적에는 밤이 단순히 무서운 시간이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밤이 조용할수록 불안하다. 모두가 잠든 시간, 조용한 방 안에 드러누운 나는 혼자만 깨어 있는 것 같은 기분에, 괜히 초조해진다. 이 시간에 자지 않으면 내일이 힘들어질 걸 알면서도, 정신이 선명하게 살아나 이런저런 생각들을 붙들고 있는 이 시간. 마치 잠들지 않으면 무언가를 놓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잠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상처받은 마음도, 부끄러웠던 순간도, 조급한 계획들도 모두 멈춰버린다. 그러니 이 생각 많은 머리는 잠을 거부한다. 어떻게든 깨어 있으려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자 애쓰며 밤을 소비한다. 하지만 그건 결국 무의미한 발버둥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그래서 나는 때로 생각해본다. 이 머릿속 운동장을 어떻게 하면 조용히 비울 수 있을까 하고. 음악을 틀어놓아도, 책을 읽어보아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아도 내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나도 그 운동장에 함께 뛰어들어 몇 바퀴를 돌아보기로 한다. 생각을 지우려 하지 않고, 잠재우려 하지 않고, 그냥 끝까지 한번 들어보는 것이다. 생각들이 말을 걸면 대답도 해주고, 감정들이 얼굴을 내밀면 “그래, 너 아직 안 갔구나” 하고 인사도 건넨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조금은 다정해지다 보면 어느새 눈꺼풀은 다시 무거워진다.

밤은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가만히 옆에 있어줄 친구 같은 존재라고 믿기로 했다. 잠을 재촉하기보다, 내 머릿속 운동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 있는 누군가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잠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괜찮다고, 누구나 가끔은 그런 밤을 보낸다고. 눈을 감았다고 모두가 잠든 건 아니라는 걸 안다고. 그렇게 혼자라는 기분이 조금은 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 역시 이 밤을 건너고 있다. 우리 모두, 결국은 잠들 수 있을 테니. 이 밤이 너무 길어도,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