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미 시작된 이야기 속에서
어느 날 스친 이 가 불쑥 말했다. “이 책은 꼭 헬리아님이 읽어야 할 것 같아요.” 단순한 권유였지만 그 말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의 확신 어린 추천은 때때로 묘한 힘을 가진다. 내가 망설이는 순간을 가볍게 뛰어넘게 만들고, 알지 못했던 세계로 곧장 들어서게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나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책을 주문했고, 배송 상자를 열자마자 곧장 읽기 시작했다. 제목부터가 나를 사로잡았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마치 내 마음속 불안을 단번에 간파하고 “지금 이 순간도 이미 시작이야”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늘 글을 쓰기 전 불안했다. 준비가 덜 되었다는 감각, 아직 내 이야기가 미숙하다는 자책, 글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발목을 잡곤 했다. 그래서 ‘언젠가 제대로 준비가 되면 소설을 쓰겠다’는 말을 되뇌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런데 책은 첫 장부터 그 믿음을 흔든다. 저자는 “소설은 거창한 계획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당신 안에서 쓰이기 시작한다”라고 단언한다. 그 문장은 마치 오래 잠긴 자물쇠가 풀리는 듯했다. 내가 쌓아둔 변명과 망설임이 무너지고, ‘아, 나도 이미 쓰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스며들었다.
책의 구성은 다른 글쓰기 지침서와 다르다. 흔히 글쓰기 책들이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고쳐야 한다’는 식으로 기술적 매뉴얼을 강조한다면, 이 책은 태도와 마음가짐에 초점을 둔다. 저자는 글쓰기를 거대한 목표로 두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일상 속 문장, 일기나 블로그, 심지어 사진 옆에 덧붙인 설명까지도 소설의 씨앗이라고 말한다. 그 말이 내 마음에 크게 박혔다. 나는 그동안 내 글이 ‘진짜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말한다. 그것도 이미 소설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라고.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문득문득 내 과거의 문장들을 떠올렸다. 혼잣말처럼 적어둔 다이어리의 구절, 친구와 나눈 대화에서 메모한 문장, 어떤 날 사진과 함께 쓴 짧은 글. 모두 하찮게 여겼던 것들인데, 이 책 덕분에 그것들이 이미 소설의 파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조각들이 모여 언젠가 하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글쓰기는 더 이상 막막하지 않았다. 시작은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이미 길 위에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했던 이유는, 그것이 스친 이의 추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내가 고른 책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떠올리며 “이건 꼭 읽어야 해”라며 건네준 책이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나는 마치 그 사람의 응원을 곁에서 느끼는 듯했다. 책 속 저자의 목소리와 스친 이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너는 이미 쓰고 있어, 그러니 계속 가도 돼.” 그 말은 내가 스스로에게 아무리 해도 잘 믿기지 않던 확신이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권유와 책의 메시지가 겹쳐지니, 그 확신이 드디어 내 것이 되었다.
책을 덮고 나니 나는 더 이상 ‘언젠가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지금도 쓰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짧은 에세이, 일상의 기록, 사진과 함께 적는 글귀 모두가 이미 소설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의 일부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글쓰기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설렘이 되었다. 글이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미완의 상태조차 이미 쓰기의 일부였으니까.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결국 나에게 거대한 기술이나 방법론을 가르쳐준 책이 아니다. 대신 내 안에 이미 시작된 이야기를 믿게 만든 책이었다. 글쓰기를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이미 하고 있는 일’로 바꿔준 책.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소설이란 거대한 작품을 완성하는 순간뿐 아니라, 그 작품을 향해 가는 모든 순간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이 책은 내 삶 속에서 하나의 선언으로 남았다. 나는 이미 소설을 쓰고 있다. 이 순간에도. 그리고 그 출발점은 스친 이의 따뜻한 추천이었다. 누군가의 권유와 한 권의 책이, 이렇게 한 사람의 삶과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